[2020.3 전시리뷰] ‘THIS IS GREEN PLACE-분노 이후를 상상하기’展 - 분노, 나아가 화합의 가능성을 엿보다 이달의 전시 들여다보기


분노, 나아가 화합의 가능성을 엿보다


‘THIS IS GREEN PLACE-분노 이후를 상상하기’展

2020. 3. 12 ~ 25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갤러리


조남주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젠더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논쟁의 장을 형성했다. 누군가는 여성이 느끼는 아픔을 보여줬다고 호평한 반면, 여성편향적인 시각에서 만든 영화 또는 피해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혹평이 줄을 잇기도 한다.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는 등 논쟁거리가 되어 화제가 된 것은 지금껏 이 문제를 제대로 이야기해보지 않았다는 의미일 터다.

이런 가운데 열린 ‘분노 이후를 상상하기’전은 ‘82년생 김지영’처럼 젠더 이슈를 다뤘다. 유·스퀘어 청년작가 공모전에 선정된 전시로, 90년대생 독립 큐레이터로 이뤄진 장동콜렉티브가 기획하고, 90년대생 작가 3명이 참여했다.

최근 여성 혐오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여성 혐오, 젠더간 갈등이 나날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분노’라는 감정으로 시작해 꼬리를 물고 전시를 이끌어 간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여성을 둘러싼 사회 문제에 대해 작품으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 내부는 한국화와 회화, 설치, 영상 등으로 지루할 틈 없이 짜임새 있게 구성됐다.



첫 섹션에는 이경옥 작가의 작품들이 걸렸다. 여성성의 한계를 극복해보려 했던 개인적 경험을 서사적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한국화로 선보였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아마추어-순간의 집중>(2016)은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게임을 치른 뒤인지, 아니면 곧 게임을 치를 예정인지 가늠할 수 없다. 오직 결의에 찬 눈빛만이 링 위에서 빛나고 있다. 작품의 배경에는 그를 지키는 또 다른 자아가 춤을 추듯 그려져 여성의 담대함과 대비된다. 여성이라면 한번쯤 느낄 법한 사회 속 해묵은 논리를 마주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을 읽을 수 있었다.

이어 옆 섹션에는 김은지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김 작가는 사회에 잠식되어 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회화 작품으로 보여준다. 캔버스 천에 푸른 빛이 감도는 여러 색들을 겹쳐 보인 <How do we BreatheⅠ>(2020)과 여기에 붉은 계통의 색을 더한 <How do we Breathe Ⅱ>(2020)는 곳곳에 상처가 나고, 쫄아든 듯 보인다. 이 자체가 현대 사회 속 여성을 상징하는 듯한 작품은 작품의 명제처럼,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강수지 작가는 <Reflecting>(2020)에서 불완전한 갸체를 의미하는 달항아리를 통해 사진과 설치, 영상으로 우리가 놓친 것들을 상기시킨다. 영상은 흙에서 비롯된 달항아리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뒤 외부의 개입으로 인해 균열이 생기고, 부서지는 과정을 담았다. 영상이 뒤로 갈수록 망가진 항아리가 다시 타자의 손길로 제 모습을 갖추게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달항아리가 깨지면서 모두가 흙에서 비롯되었으며, 결국 같은 존재라는 점을 알아차리게 한다. 다시 달항아리가 재건되는 장면은 막연하게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한계를 뛰어넘어 가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그 옆으로는 영상으로 비춰진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깨진 항아리를 다시 이어붙인 달항아리 4개를 함께 전시했다.



뒤로는 녹색과 흰색 현수막이 천정에 걸려있다. 현수막에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후원금을 내준 117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아래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살펴볼 수 있었다. 여기선 예술인의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며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장동콜렉티브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젠더 이슈를 단순히 남녀 간의 갈등으로 소비하는 행태에서 벗어나 성평등 사회, 남성과 여성, 제3의 성의 화합을 꿈꿔 이에 대한 담론을 적극적으로 펼쳐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다가온 전시였다. 이번 전시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에 따른 문제에 직면하는 것을 넘어, 모든 이들이 어우러지는 더 나은 세상을 엿볼 수 있었다.



위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25호(2020년 4월호) <전시리뷰>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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